모듈러 건축, 승강기 설치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꾸다공장에서 만들어져 현장으로 배송되는 조립식 건축공법…승강기도 모듈화 개념 적용 가능해져
모듈러 건축은 공장에서 미리 집의 주요 부위를 만들고 현장에서 조립해 짓는 최신 공법이다. 일반 건설공사 대비 비용이 적게 들고, 시공기간이 짧아 경제적인데다 현장통제가 용이해 민원이나 안전사고 위험도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단기간 주택공급을 늘리려는 정부는 수도권 공공임대는 물론 3기 신도시까지 주택을 모듈러 공법으로 지어 공급 속도를 높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공공물량을 중심으로 신 공법인 모듈러 건축 프로젝트가 증가함에 따라, 관급 물량을 소화하는 국내 승강기 기업들도 이를 주시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모듈러 건물을 짓더라도 승강기 설치 방식은 기존의 현장 조립 시공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모듈러 건축이 늘어나는 미래엔 승강기도 ‘사전제작, 모듈화’라는 과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 오티스는 고정밀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전문기업과 협력해 설치공정을 공장에서 완료하는 모듈러 최적화 시공을 선보였다. 이에 본지는 국내 모듈러 시장동향에 대해 알아보고, 오티스의 모듈러 시공사례를 통해 새로운 엘리베이터 방식이 국내 승강기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진단해봤다.
모듈러 공법은 창호, 외벽체, 전기배선, 배관, 욕실, 주방기구 등의 자재와 부품이 포함된 볼륨메트릭(Volumetric, 3D) 형태의 박스모듈을 공장에서 제작하면, 현장에서는 조립과 설치만 이뤄진다. 일반적으로‘레고형 건축’이라고 불린다. 국내에서는 금강공업, 스타코, 유창이앤씨, 포스코A&C가 주로 모듈러 건축물을 제작하고 있다.
시공 방식에 따라 다르지만 모듈러 건축물은 공장제작률이 50~80% 수준으로 기존 공법 대비 50% 이상의 공기 단축이 가능하며, 현장작업을 줄여 기능인력 감소 등 우리나라 건설 현장이 직면한 문제점들을 완화할 수 있다. 해체 시에도 모듈을 재사용할 수 있어 건설폐기물 발생을 대폭 줄일 수 있는 지속가능한 친환경 공법이기도 하다.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에 따라 현장공사 불능일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점도 유리한 부분이다. 모듈러 건축은 통제된 환경 하에 공장에서 제작되기 때문에 자연환경의 변화에 관계없이 생산활동이 가능하다.
또한, 빠른 시공 덕분에 건설공사의 고질적인 문제인 민원발생도 크게 경감시킬 수 있다. 건설업체들도 모듈러 공법이 원가 절감과 안전 사고 예방에 유리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같은 장점으로 인해 모듈러 건축 시장은 공공발주를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자료를 바탕으로 국내 모듈러 건축 시장 발주 규모는 2019년 8,000억 원에서 2020년 1조2,000억 원, 올해 1조6,000억 원, 내년 2조4,000억 원까지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복수의 건축분야 전문가들은 국내 모듈러 건축시장에 대해 “이제 막 첫발을 내딛은 단계”라고 평가한다. 공공분야 발주가 늘더라도 건설시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간 건축 분야에서 모듈러 건축을 채택하지 않는 이상, 시장 확대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토교통부 건축허가 면적통계에 따라 지난 2003년~2019년 사이 준공된 모듈러 건축 연면적 합은 450,321㎡로, 이는 같은 기간 국내에 건축된 전체 연면적(2,396,649,000㎡) 대비 0.02%에 불과한 수준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부 유정한 교수는 “국내에서 모듈러 건축은 학교와 기숙사, 병원, 군사시설 등 일부 저층건물에만 적용되는 공법으로, 아파트나 오피스 빌딩 민간 등 고층건축이 주류인 국내 시장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이라고 언급했다.“구조적으로 10~20층 높이까지는 안정적인 것으로 보지만, 화재나 지진 시 재료의 내화, 구조안전성 면에서 법규 제약이 많아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모듈러 건축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국회차원에서도 법 개정을 통한 모듈러 주택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 7월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모듈러 주택을 활성화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모듈러주택으로 인정받은 건물에 대해 건폐율·용적률·높이 제한 등을 완화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다음으로 모듈러주택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주택 대상에 준주택(숙박시설)을 추가했다. 지금까지 현행 법령에선 모듈러주택을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에만 적용하도록 돼 있었다. 이 때문에 적용 범위를 오피스텔, 기숙사, 다중생활시설, 노인복지주택 등으로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허영 의원은 “스마트 건설기술 중 하나인 모듈러 건축공법은 건축물 탄소절감, 공기단축 등 국내 건설현장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기술로 주목받고 있다”며 “정부는 한국판 뉴딜과 2050 탄소중립 비전 실현을 위해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만큼 모듈러공법 확산을 위해서도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승강기 기업 오티스, 혁신적인 모듈화 솔루션으로 미래 건설시장에 대비하다
주류 시장은 아니었지만, 건설 산업 수요가 늘며 모듈식 건설 시장에 대한 관심도 최근 몇 년 동안 증가해왔다. 그렇다면 모듈러 건축공법이 가져올 엘리베이터 시공방식의 변화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의문은 모듈화된 타입의 엘리베이터 제작에 성공한 오티스의 사례 통해 어느정도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오티스는 지난 7월 고정밀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기술을 가진 독일의 메이저 건설업체 Max Bögl(막스보글)과 함께 조립식 승강로를 포함한 모듈러 최적화 엘리베이터 시스템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조립식 승강로와 사전 조립된 오티스 Gen2 엘리베이터 기술로 구성된 혁신적인 ‘모듈화 시스템’은 건설 회사, 부동산 개발업체, 건축 전문가를 대상으로 제조 비용 절감, 신속한 시공 같은 이점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번 오티스와 막스보글 사이의 전략적 협업은 엘리베이터 산업에 모듈식 구조가 이미 성큼 다가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모듈화 승강기 시스템은 오티스의 Gen2 엘리베이터와 막스보글의 모듈식 승강로 구조물로 구성돼 있다. 이 솔루션은 기존 건물과 신축 건물 모두에 적합하며, 승강로 피트 깊이와 오버헤드 높이만 확보되면 건물 외부 내부 관계없이 모두 설치 가능하다.
공장에서 조립된 이후엔 배송, 설치 과정에서 조정이 거의 필요 없어 설치가 빠르게 진행된다. 미리 제작된 승강로 구조물을 차례로 쌓고 고정시키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5~8시간에 불과하다. 최소 수십일이 걸리는 현장 공정을 생각하면 놀라운 속도다. 여기에 공장 조립으로 일관되고 정밀한 제조 품질이 보장되는 점도 큰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일반적인 승강기 전문가들은 “승강기는 현장설치 전까지 반쪽짜리 물건”,“시공, 설치품질에 따라 승강기의 품질이 결정된다”는 오랜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모듈러 건축 현장에서는 공장 조립제조가 가장 핵심적인 공정이다. 때문에 모듈러 건축이 늘어날수록 설치방법에 대한 패러다임도 점차 변화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오티스와 막스보글이 개발한 모듈화 시스템은 승강기 분야의 ‘정밀함’을 재정의 하고 있다. 사진(오른쪽 상단)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반 승강기 설치와 달리 모듈화 승강기 시스템은 엘리베이터와 승강로가 밀리미터 단위로 매우 가깝게 붙어있다. 엘리베이터가 건물에서 차지하는 공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목적인데, 이는 매우 높은 정밀성이 담보되어야만 가능한 기술이다.
오티스는 이러한 정밀성의 바탕엔 Gen2 엘리베이터 기술이 있다고 설명한다. Gen2의 특징 중 하나인 폴리우레탄 소재 플랫벨트는 소음이 적고 일반 로프에 비해 승강로 면적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모듈러 주택에 매우 적합하기 때문이다. 막스보글 또한 친환경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있어 모듈화 시스템이 기존 콘크리트 시공 대비 탄소발자국(콘크리트1kg 당 CO2/㎥)을 평균 39% 더 줄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오티스는 “지속 가능한 제품, 효율적인 절차, 혁신적인 계획 프로세스 등등 건설 산업은 승강기 업계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솔루션을 요구하고 있다”며 “모듈화 승강기 솔루션은 이러한 시장 요구에 대한 응답인 셈”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