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승강기 설치현장 사고…해법 찾기 주무부처가 나서야사고발생 근본적 원인? "작업자 안전불감증, 공사용 사용을 위한 공기단축"
업계는 도급문제로 본질 벗어날까 우려
지난달 8일 오전 경기 성남시 수정구 판교의 한 신축건물 공사현장(사진)에서 승강기 설치작업을 하던 작업자 2명이 추락했다. 출동한 구조대원들이 이들을 구조해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2명 모두 숨졌다.
작업자들은 엘리베이터 카 레일 조정 작업 중 카와 함께 지상 12층에서 지하 5층 바닥으로 추락했다. 해당 현장은 요진건설산업이 시공을 맡고 현대엘리베이터 승강기 설치가 진행 중이던 곳으로, 사망한 작업자는 인천 소재 승강기 설치업체 대표와 소속 직원으로 밝혀졌다. 고용노동부는 두 기업에 대한 압수수색과 함께 시공업체인 요진건설산업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으며, 현대엘리베이터도 기획감독에 들어갔다.
이번 사고가 더욱 안타까운 점은 국토부를 비롯해 노동부, 행안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범 부처가 승강기 설치현장 사망재해 예방을 위해 「승강기 작업장 안전강화 대책」을 내놓은 지 2년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대책마련에 빈틈은 없었는지, 개선대책이 현장에서 잘 적용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승강기업계에서 설치현장 사망사고 소식은 어제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올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업들이 산업재해 예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만큼 이번 사망사고가 더욱 집중조명 받게 됐다.
고용노동부, 현대엘리베이터 기획감독 실시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발생한 판교 현대엘리베이터 설치공사 사망사고와 관련해 현대엘리베이터 본사 및 전국 시공 현장에 대한 기획 감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현대엘리베이터 본사와 전국 시공현장의 안전보건관리실태 전반을 점검해 유사 사고를 예방하고, 본사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근원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2019년 이후 현대엘리베이터 시공 현장에서 8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등 추가적인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는 먼저 현대엘리베이터 본사에 대해서는 전사적 차원(제조·설치·유지관리)의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제대로 구축.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한다. 노동부는 본사 감독 시에 엘리베이터 제조과정에서의 본사·공장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 전반을 확인하고 특히 원청의 안전보건조치 의무 이행 여부도 집중 조사한다.
이와 함께 현대엘리베이터 신규 설치가 진행 중인 건설현장 일부에 대한 감독도 동시 추진한다. 건설현장 감독 시에는 승강기 관련 안전조치를 중심으로 해당 현장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빠짐없이 확인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기획 감독 시에는 공동도급 방식의 승강기 설치업무가 적법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해당 운영이 승강기 관련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대엘리베이터와 협력업체(설치 시공사) 간 업무 구분, 설치 시공사 근로자의 업무수행 방식 등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공정에 대한 실태조사도 병행키로 했다.
만일 실태조사 결과 위법.부당 사항이 발견될 경우 노동부는 현장 지도, 관계기관 통보 등을 통해 승강기 제조업체와 협력업체 간 공정.평등한 계약 관행이 확산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권기섭 산업안전보건본부 본부장은 “엘리베이터 업계 1위인 현대엘리베이터 설치 현장에서 하청근로자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반복적으로 중대재해를 유발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본사에서 현장까지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강력한 기획감독을 선제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고발생의 근본적 원인은 안전불감증과 공기단축…공동도급 문제로 본질 벗어나면 안돼
이번 사고에 대한 고용부 시각은 앞서 발표한 것처럼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와 함께 ‘공동도급에 있어 불공정 계약이 있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승강기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고 원인에 대해 작업자 과실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작업자들이 카에 탑승하기 전 필수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안전장치의 고정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 사고조사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안전장치에 대해 작업자 스스로 확실히 확인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비상정지장치가 제대로 물리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하다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안타까워했다.
국회에서도 이러한 승강기 작업자 사고가 끊이지 않는데 대해 지적하고, 정부에서도 대책마련의 일종으로 표준계약서와 현장 안전관리 감독 강화, 작업자용 안전비계를 개발·보급하는 등 개선책을 마련해왔다.
승강기 제조사들도 사고 발생을 줄이기 위해 자체 안전관련 예산을 늘리고 지도감독을 강화하며 현장 안전을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공사용 승강기 활용을 위해 촉박한 승강기 공사스케줄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승강기 설치업계의 의견이다.
한 승강기 설치업계 관계자는 “최근 사고의 명확한 원인은 조사로 밝혀지겠지만 대다수 승강기 사고는 열악한 작업환경, 촉박한 공기와 이로 인한 작업자 피로도 증가와 같이 여러 요인으로 발생하게 된다”며 “공동도급 계약과는 별개로 설치작업의 현실적 어려움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승강기 설치작업 중 사고, 승강기 사고 통계로 포함되지 않아
승강기 설치대수가 많아지고, 노후승강기 교체현장이 늘면서 승강기 설치작업자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내년부터는 승강기 교체물량이 더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그만큼 설치 작업자들의 안전사고 빈도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승강기 설치현장은 하이테크 기술로 전문성이 요구되면서도 고소작업에 위험도가 높고 사망사 발생빈도도 높아 주무부처의 중점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로선 이용자 안전보다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승강기안전관리법(이하 승안법)이 가진 맹점 때문이다.
승강기 제조와 인증, 유지관리, 이용자 안전에 관한 부분들을 승안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과 달리, 현재 승강기 설치업은 건설산업법에서 관장하며 설치공사 현장은 국토교통부 소관이다.
또 작업자 안전과 관련된 부분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고용노동부에서 관리감독하게 돼있다.
승안법에 따라 설치검사를 받고 고유 번호를 부여받기 이전엔 승강기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행정안전부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사실상 없다. 승강기 현장에서 사고가 났지만, 승강기 사고는 아닌 셈이다.
실제로 공식 승강기 사고통계에서 작업자 사고를 집계할 때, 설치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는 들어가지 않는다. 법적으로 이는 건설산업 사고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이에 3년 전 설치작업자 사망사고가 크게 이슈화 됐을 때 행안부 내부적으로 작업자 안전부분을 챙기기 위해 승강기 설치작업에 관한 규정을 승강기안전관리법에 추가하려고 했으나, 부처간 의견조율이 어려워 진척 없이 마무리 됐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공사편의와 효율이 우선시 되는 건설현장에서 공기단축 요구를 어렵게 하는 승강기안전관리법을 반겼을 리 만무하다.
행안부 관계자는 “설치 작업 현장 사고는 행안부에서 법적인 권한이 없기 때문에 관여하기 어렵다. 유지관리 작업자 사고나 이용자 사고가 아닌 이상, 승강기 사고조사위원회도 현장에 함부로 출입 할 수 없어 사고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국토부와 같은 경우, 단위 사업이 크고 관련된 산업분야가 많아 전문성을 띄기 어렵다. 작업현장에 대한 이해도 낮아 제대로 된 사고예방 대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또한 고용부 역시 사고 원인과 책임소재에 대한 부분만 크게 강조돼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설치작업자 사고 예방을 위해 승강기 설치분야에 이해도가 높은 주무부처 권한 확대가 필요하며,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정부의 의지가 요구되는 상황이다.